아일랜드
Hann의 아일랜드 워홀기 #26_아일랜드의 날씨
newhak
2019.05.14
아직 아일랜드에 오기 전, 막연히 이 곳의 날씨는 어떨까 상상하면 비와 바람 그리고 1년 365일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나에게 아일랜드가 친숙한 나라는 아니었기 때문에, 영국 바로 옆에 있으니까 아마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영국의 날씨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장 크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일랜드에 다녀온 사람들의 글을 읽어봐도 그런 것 같았고.
지난 아일랜드에서의 8개월. 흔히 알려진 그런 변덕스러운 날씨인건 맞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좋은 점도, 나쁜 점도 분명히 있었다는 사실.
내가 아일랜드에 도착했던 때는 5월 중순. 먹구름과 비바람이 가득할 거라는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구름 한 점 없고 화창한 날이 계속됐다. 그야말로 완연한 봄! 다만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라면, 미세먼지.. 미세먼지가 없고, 해가 정말 길다는 것. 해가 어느 정도로 기냐면, 5월에도 새벽 5시면 해가 뜨고, 밤 10시가 넘어야 해가 지곤 했다. 그래서, 처음 2-3주 동안은 해가 너무 일찍 뜨는 것에 적응을 못해서 잠을 설치곤 했었던 기억이 난다.
해가 10시에 진다고? 사실 이건 약과였다. 7월, 여름이 찾아오면 하루종일 완전 깜깜한 저녁을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열두시가 다 된 시간에도 저 먼 하늘에 햇빛 꼬랑지가 슬쩍 걸려있는 정말 말도 안되는 광경을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새벽 네시가 되면 다시 해가 떠오르는 마법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날씨는 말 할 것도 없다. 봄과 여름의 아일랜드를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매일 했을 정도로 맑은 날이 몇달 동안 이어진다! 물론, 2018년의 여름이 아일랜드에서도 굉장히 이례적인 계절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비가 너무 오지 않아 문제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여행자인 내 입장에서는 그게 오히려 더 반갑게 느껴지더라고.
그럼 비바람과 먹구름으로 가득한 아일랜드는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거냐고? 당연히 아니다. 여름이 지나고, 10월, 11월이 왔을 때 알게 됐다. 내가 정말 말도 안되게 좋은 시기에 아일랜드 생활을 시작했구나 하고. 지지 않을 줄 알았던 해가 갑자기 짧아지기 시작하고, 맑은 하늘을 볼 수 없는 날이 점점 많아지는가 하면, 예고 없이 비가 내리기도 한다. 그래 이게 바로 아일랜드지! 하는 날씨랄까.
사실 겨울을 맞기 전에 그런 이야기는 정말 많이 들은 터였다. 너무 좋은 계절에 아일랜드에 온 거고, 겨울이 되면 정말 우울해질 수도 있다고.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그 때는 잘 몰랐는데, 경험하니 알겠다. 먼저 해가 극단적으로 짧아진다. 아침 9시가 돼서야 날이 밝고, 4시면 갑자기 해가 뚝 떨어져 밤이 돼버리는 날들이 찾아온다. 게다가 비바람은 이제 일상.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밤이 돼버리고 날씨까지 안 좋으니 밖에 자주 나가지 않는 날들이 잦아진다. 덕분에 돈은 조금 덜 쓰지만, 이렇게 슬럼프가 오는 건가 싶었다.
아일랜드의 날씨를 8달 동안 마주하며, 그래 될 대로 되라지 하는 마음이 생겼다. 일기예보를 보는 게 정말 도움이 되지 않을 정도로 변덕스러운 날씨. 비가 오든 말든 나는 내 갈 길을 간다. 뭐 이런 거다. 어차피 날씨라는건 안 좋을 때도, 좋을 때도 있는 거니까! 오늘 비 오면 내일은 맑지 않겠어?